[민병찬 교수 칼럼] 입암 민제인 선생의 동몽선습 이야기(15)

관계의 시대를 위한 고전 읽기 : AI가 답하는 시대, 사람은 무엇을 배워야 하나

(민병찬 인간·안전공학 박사: 국립한밭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민주평통 대통령 자문위원)

 

『동몽선습』에서 되짚어 보는 생각의 힘과 사람 사이의 도리

 

교실에서 같은 주제로 쓴 두 편의 글을 읽을 때가 있다. 하나는 문장이 매끈하고 정보도 잘 정리돼 있다. 다른 하나는 표현이 서툴고 문장의 흐름도 고르지 못하다.

 

그런데 읽고 난 뒤 오래 생각하게 되는 쪽은 두 번째 글일 때가 많다. 망설임과 자기 경험, 남의 말과 자기 생각 사이에서 씨름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글을 평가하면서 나는 종종 묻게 된다. 잘 정돈된 답을 읽고 있는가, 아니면 한 학생이 생각해 온 과정을 만나고 있는가. 물론 매끄러운 글이 모두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은 글은 아니며, 서툰 글이라고 더 깊은 생각을 담았다고 할 수도 없다. 문장의 모양만으로 정직함을 판단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다만 교육하는 사람으로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답에 이르기까지 학생이 무엇을 의심했고, 어떤 근거를 골랐으며, 어디에서 생각을 바꾸었는가 하는 점이다. 결과물만 평가한다면 정작 배움이 일어난 자리를 지나칠 수 있다.

 

인공지능은 긴 자료를 순식간에 요약하고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 낸다. 이런 도움을 굳이 외면할 이유는 없다. 자료 정리 시간을 줄여 더 생각하고 새로운 관점을 살펴볼 수도 있다.

 

문제는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동안 자신의 판단까지 맡겨 버리는 데 있다. 문제는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동안 자신의 판단까지 맡겨 버리는 데 있다. 답을 얻었다는 안도감이 이해했다는 착각으로 바뀌기 쉽다. 알 것 같던 내용을 자기 말로 설명하다 막히는 경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교실에서는 완성된 답 뒤에 질문을 하나 더 놓아야 한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이 답이 맞지 않는 경우는 없겠는가.” 학생이 근거를 다시 살피고 다른 의견과 부딪쳐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틀린 답을 고치는 것만큼, 자신이 확신했던 답을 의심하는 일도 배움이다. 교사는 정답을 빨리 제시하기보다 학생이 생각을 이어갈 틈을 남겨 주어야 한다. 기다림은 더디지만, 그 시간을 건너뛰고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을 기르기는 어렵다.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동몽선습』의 첫 구절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天地之間萬物之衆에 惟人이 最貴하니 所貴乎人者는 以其有五倫也라.” 천지지간 만물지중에 유인이 최귀하니, 소귀호인자는 이기유오륜야라.

 

하늘과 땅 사이의 많은 존재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하며, 그 까닭은 사람에게 오륜이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사람의 귀함을 재주나 힘에 앞서 사람 사이의 도리에서 찾았다는 점이 마음에 남는다. 오륜이 담고 있는 옛 질서를 오늘의 생활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그러나 가족을 돌보고, 친구 사이의 믿음을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의 말로 풀어보면 서로를 동등하게 존중하고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의무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더 많이 알고 더 빨리 처리하는가를 따지기에 앞서, 그 능력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살피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인공지능은 위로하는 문장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장을 건네받은 사람의 곁에 남아 돌보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잘못된 정보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이를 바로잡고 사과해야 하는 사람도 그것을 사용한 우리다.

 

“기계가 그렇게 알려 주었다”는 말로 책임을 덜 수는 없다. 기술의 도움을 받을수록 확인해야 할 근거와 살펴야 할 사람도 함께 떠올려야 한다.

 

인간다움은 거창한 선언보다 작은 선택에서 드러난다.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에게 설명을 한 번 더 해 주는 일, 회의에서 미쳐 말하지 못한 사람의 의견을 기다리는 일, 실적에 보탬이 되지 않더라도 약속한 일을 끝까지 하는 일이다.

 

길을 빨리 가는 사람에게는 잠깐의 지체일수 있지만, 뒤에 남은 사람에게는 함께 갈 수 있다는 신호가 된다. 효율만으로 계산하면 불필요해 보이는 배려가 관계를 지탱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인간을 언제나 따뜻하고 책임 있는 존재로 미화할 수는 없다. 사람도 편견에 기대고, 잘못을 숨기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다.

 

인간다움은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성질이라기보다 살아가며 끊임없이 가다듬어야 하는 태도에 가깝다. 내 판단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남의 말을 듣고, 잘못한 뒤에는 고치는 연습이 필요하다. 교육은 바로 그 연습을 도와야 한다.

 

앞으로 학생들은 더욱 능숙하게 인공지능을 사용할 것이다. 나는 그들이 좋은 도구를 갖춘 만큼 자신의 질문도 잃지 않았으면 한다.

 

빠르게 얻은 답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그 답이 누군가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술이 대신해 주는 일이 늘어날수록 우리가 직접 해야 할 일도 또렷해진다.

 

생각을 멈추지 않는 일, 사람의 사정을 헤아리는 일, 그리고 자기 이름으로 내놓은 말과 선택을 책임지는 일이다..